경기 성남 문화·역사 2026년 6월 1일

조선 영남대로의 첫 걸음 — 경기옛길 영남길 제1길 달래내고개길 11.2km 완주기

한양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던 조선시대 최대 간선도로 영남대로의 첫 관문이 성남 판교에 살아있다. 경기옛길 영남길 제1길 달래내고개길은 청계산 옛골에서 출발해 천림산 봉수대, 판교테크노밸리, 판교박물관, 성남 항일의병 기념탑, 낙생대공원을 거쳐 분당 마루공원까지 이어지는 11.2km 코스다. 국내 최대 규모 조선시대 봉수대(경기도 기념물 제179호)와 1,600년 전 백제 돌방무덤 11기가 첨단 IT 도시 판교 한가운데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초여름 숲길과 도심 구간이 번갈아 펼쳐지는 이 역사 탐방 코스를 자세히 소개한다.

경기옛길은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 7개를 현대 도보길로 복원한 경기도의 역사 탐방 네트워크다. 의주길(서울~의주), 삼남길(서울~통영), 평해길(서울~평해), 강화길(서울~강화), 경흥길(서울~경흥), 영서길(서울~춘천), 그리고 영남길(서울~부산)이 7개 노선을 구성한다. 영남길은 한양 사대문에서 영남 지방을 잇던 영남대로를 따라가는 노선으로,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오는 첫 구간이 제1길 달래내고개길이다.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나 산책로가 아니다.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오던 영남 선비들, 보부상들, 정부 공문을 전달하던 관리들이 실제로 걷던 길의 흔적이다. 그 역사적 경로가 아파트 단지와 첨단 기업 빌딩 사이를 통과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 달래내고개길 코스 기본 정보
  • 구간: 청계산 옛골 → 천림산봉수지 → 금토천 → 판교테크노밸리 → 판교박물관 → 낙생대공원 → 마루공원(황새울교)
  • 거리·시간: 11.2km (실 11.7km) / 약 3시간 30분 ~ 4시간
  • 스탬프 포인트: ① 천림산 봉수지 입구 ② 판교박물관 앞
  • 출발 교통: 신분당선 논현역 → 청계산역 → 버스 4432번 또는 341번 → 옛골 정류장 하차
  • 귀환 교통: 수내역 4번 출구 → 정자역(신분당선 환승) → 논현역
  • 주의 구간: 성남금토지구 공공주택 공사로 금토천 구간 일부 우회 필요 (2026년 기준)
  • 황새울교: 보수공사 중 — 임시 다리 이용 후 수내역 방향

옛골 입구에서 달래내고개길 안내판을 만나면 본격적인 역사 여행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옆 좁은 달래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수봉 등산로 입구를 지나 청계산 숲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도심에서 이렇게 빠르게 깊은 숲길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코스의 장점 중 하나다. 청계산 입구에서 정상 봉수지까지의 오르막은 약 20~30분으로 비교적 짧지만 경사가 있어 천천히 올라야 한다. 봉수대 주변 난간 구간과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 경험이 적은 일반 탐방객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이 코스의 첫 번째 역사 명소는 천림산 봉수대다. 경기도 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된 이 유적지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봉수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구조적으로 가장 완벽한 유적으로 꼽힌다. 5개조 연조(煙竈, 불을 피우는 화덕)와 방화벽, 담장지가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조선시대 5로 봉수 노선 중 2로 내지봉수 직봉으로, 용인 석성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서울 목멱산(남산) 봉수로 전달하는 경기도 내 마지막 봉수였다. 용인 석성산과는 18.75km, 서울 남산과는 16km 거리에 위치한다. 전쟁이나 외적의 침입 소식이 이 봉수대를 통해 한양에 전달됐다. 봉수대 위에 서면 청계산 능선과 판교 신도시가 한눈에 펼쳐지는 조망을 얻을 수 있다.

천림산을 내려오면 조선시대 의병장의 흔적이 나온다. 달래내고개길 도중에 의병장 윤치장 생가터가 있다. 일제강점기 의병 활동의 역사가 이 길 위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걷는 이는 많지 않다. 금토천을 따라 걷다 보면 판교테크노밸리와 SK AX 판교캠퍼스 등 첨단 IT 기업 빌딩들이 나타난다. 1,000년 전 옛길이 21세기 첨단 산업단지를 가로지르는 묘한 교차가 이 구간의 특징이다. 단, 2026년 현재 성남금토지구 공공주택 공사로 인해 금토천 하천 구간 일부가 막혀 있어 작업 구간을 우회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코스 안내판이 없는 구간에서는 금토교를 지난 뒤 SK AX 판교캠퍼스 건물 입구에서 금토천을 건너 제1길로 복귀하는 경로를 택하면 된다.

달래내고개길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달래내고개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오빠와 여동생이 이 고개를 넘다가 오빠가 여동생을 먼저 보내고 뒤따르다가 혼자 남겨진 여동생이 오빠를 부르며 '달래(내)'를 외쳤다는 설화가 지명의 기원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던 사람들에게 이 고개는 설레고도 두려운 길목이었다. 과거에 합격해 금의환향하는 이도, 먼 길을 온 객도 이 고개를 넘어야 한양에 닿을 수 있었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와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고개지만, 땅의 기억은 이름 안에 남아있다.

판교박물관은 이 코스에서 꼭 들러야 할 핵심 명소다. 2013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성남시의 역사를 담은 공간이지만, 가장 중요한 소장품은 약 1,600년 전 한성백제 시대 유적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돌방무덤 11기가 국내 최초로 원형 그대로 실내에 이전·복원되어 전시되고 있다. 판교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굴된 이 고분들은 삼국시대 동북아 교류를 증명하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박물관 입장은 무료이며, 건물 앞에 두 번째 스탬프함이 있어 영남길 완주 도장을 찍을 수 있다.

판교박물관에서 나와 성내미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면 낙원중학교와 동판교성당이 나란히 서 있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이 이어진다. 이 골목 끝에서 고속도로 위 터널 육교를 넘으면 판교 크린타워가 눈앞에 나타난다. 판교 주민들에게도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전망대는 화랑공원을 내려다보며 판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다. 박물관에서 크린타워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사실상 도심 골목길이라 그늘 없이 햇빛에 노출되는 구간이므로, 6~8월에는 충분한 수분 보충이 필요하다.

판교 크린타워(그린타워)도 빼놓기 아깝다. 판교 신도시 기반시설로 LH가 건설해 성남시에 기부채납한 이 건물은 소각장을 북카페 전망대로 전환한 독특한 시설이다. 높이 47m 전망대에서 경부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판교·분당 신시가지, 청계산이 한눈에 보인다. 걷다가 지쳤을 때 잠시 올라가 쉬어가기 좋은 포인트다. 낙생대공원에서는 성남 항일의병 기념탑과 통일신라·고려시대 돌방무덤, 돌덧널무덤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역사의 레이어가 이 11.2km 안에 모두 담겨 있다.

달래내고개길에서 주의해야 할 현실적 정보도 있다. 2026년 현재 성남금토지구 공공주택 사업이 진행 중이라 예전 코스 일부가 공사 구역으로 막혀 있다. 금토교를 건넌 뒤 금토천 하천변 산책로에 진입하려 해도 하천정비공사로 진입로가 차단된 구간이 있다. 현장에 별도 우회 표시가 없어 당황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공사 구간을 따라 우회한 뒤 SK AX 판교캠퍼스 건물 입구 부근에서 다시 금토천을 건너 제1길 경로로 복귀하면 된다. 또한 도착점인 마루공원 황새울교도 보수공사 중이라 2026년 현재 임시 다리를 이용해 탄천을 건넌 뒤 수내역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코스 초행이라면 경기도 경기옛길 공식 앱을 미리 설치해두는 것을 권한다.

경기옛길 전체는 영남길 외에 삼남길·평해길·의주길·강화길·경흥길·영서길 등 7개 노선으로 구성된다. 각 노선은 여러 개의 소구간으로 나뉘어 있어 하루에 한 구간씩 끊어 걸을 수 있다. 영남길은 제1길(달래내고개길)부터 제10길까지 총 10개 구간, 약 100km에 달하는 장거리 코스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스탬프 투어와 연계되어 있어, 각 구간 도착 지점과 주요 명소에 설치된 스탬프함에서 도장을 찍고 완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인증서를 받으면 경기도 기념품을 받는 이벤트도 종종 운영된다. 처음 경기옛길을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달래내고개길이 가장 접근하기 편하고 볼거리가 풍부한 입문 코스로 추천된다.

이 길을 6월에 걷는 것은 특히 추천할 만하다. 청계산 숲길 구간은 초여름 초록이 짙어지는 시기에 그늘이 풍부하고 바람이 시원하다. 한여름 7~8월은 습도와 열기로 도심 구간이 힘들 수 있어, 6월 초중순이 날씨와 숲 상태 모두 최적의 시기다. 전체 11.2km를 한 번에 완주하기 부담스럽다면 판교박물관 앞에서 코스를 끊고 판교역으로 빠져나오는 방법도 있다. 전반 5~6km 구간(옛골~판교박물관)만 걸어도 봉수대와 백제 고분이라는 두 핵심 역사 명소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판교 크린타워 북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중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경기옛길 영남길 10개 구간을 모두 완주하면 경기도에서 발행하는 공식 완주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달래내고개길은 영남길의 첫 페이지이자, 서울과 경기도 경계를 넘는 역사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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