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적십자병원 이전 신축 2,500억 국비…90병상→351병상, 응급·심뇌혈관·분만센터 한 번에
보건복지부가 경남 통영 적십자병원 이전 신축 사업에 건축비 약 2,500억 원을 전액 국비로 지원하는 계획이 추진 중이다. 기존 90여 병상에서 300~351병상 종합병원 수준으로 대폭 확대되고, 24시간 전문의 상주 응급센터, 뇌졸중 즉시 대응 심뇌혈관센터, 분만센터, 공공산후조리원이 한꺼번에 들어설 예정이다. 통영·고성·거제 3개 시군 45만여 명의 의료 접근성을 좌우하는 이 사업이 부지 선정 갈등으로 표류할 경우 막대한 국비를 통째로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인근 거창군은 이미 부지를 확정하고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어 통영의 조속한 결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영 적십자병원은 경남 남해안 지역에서 사실상 유일한 공공 성격의 종합 의료기관이다. 통영·고성·거제에 걸친 넓은 진료권을 담당하지만 현재 규모는 90여 병상에 불과하다. 응급실 처리 능력의 한계, 분만실 부재, 심뇌혈관 전문 치료 불가 등의 문제로 중증 환자들은 창원이나 부산으로 이송되는 경우가 잦았다. 뇌졸중·심근경색처럼 골든타임이 생명을 가르는 질환에서 장거리 이송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통영에서 창원까지는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이런 구조적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2,500억 원의 국비를 전액 투입해 병원 자체를 새로 짓는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부지는 통영시가 제공하는 방식이다.
- 사업비: 건축비 약 2,500억 원 — 보건복지부 전액 국비 지원, 통영시 부지 제공
- 규모 확대: 기존 90여 병상 → 300~351병상 종합병원
- 신설 기능: 24시간 전문의 상주 지역응급의료센터
- 신설 기능: 뇌졸중·심근경색 도착 즉시 치료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
- 신설 기능: 분만센터 + 공공산후조리원
- 진료권: 통영·고성·거제 3개 시군 약 45만 명
- 최대 변수: 부지 선정 갈등 →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여부
이 사업이 실현되면 통영 시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크다. 우선 24시간 전문의가 상주하는 응급의료센터가 생긴다. 지금까지는 야간이나 주말에 중증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통영 내에서 처리하기 어려워 외지로 이송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 환자를 도착 즉시 진단하고 치료하는 심뇌혈관질환센터도 신설된다. 뇌졸중은 증상 발현 후 3시간, 심근경색은 90분 이내에 처치를 받는 것이 생존율과 예후를 결정한다. 통영에서 창원까지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센터의 신설은 수십 명의 생명과 직결된다. 분만센터 설치도 중요한 대목이다. 현재 통영·고성 일대는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른바 '분만 취약지'다. 공공산후조리원까지 한꺼번에 들어서면 출산·육아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문제는 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사업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영시는 기존에 명정동 충렬사 일원을 신축 부지로 고집해왔다. 구도심 의료 접근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이 입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90병상에서 350병상 규모로 규모를 키우려면 넓고 평탄한 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충렬사 일원은 경사가 가파른 구릉지로, 부지 조성을 위한 대규모 산지 절토와 폭 20m 이상의 구급차 전용 진입로 신설에만 수백억 원의 추가 시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비 2,500억 원이 국비로 지원되더라도 부지 조성비는 통영시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과도하게 불어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다. 공공의료 투자는 사업 규모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기재부 예타를 통과해야 국비 집행이 가능하다. 예타의 핵심 기준 중 하나가 광역 접근성이다. 통영만이 아니라 고성·거제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입지인지를 평가한다. 구도심의 경사진 골목 안에 병원이 들어선다면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병원 측 주장이다. 병원 측은 3개 시군 주민 모두의 교통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예타를 절대 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2,500억 원 국비 사업 자체가 좌초될 수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단순히 서류상 통과의 문제가 아니다. 예타는 해당 사업이 투입 대비 충분한 사회적 편익을 가져오는지를 수치로 검증하는 절차다. 병원의 경우 얼마나 많은 인구가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가 핵심 지표가 된다. 통영 구도심의 경사지 부지에 병원이 들어설 경우, 거제와 고성 방향에서의 접근이 불편해져 실이용 인구가 줄어든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 ratio)이 낮아져 예타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타가 부결되면 2,500억 국비 지원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부지 선정이 단순한 입지 문제가 아니라 사업 존폐를 가르는 열쇠인 이유다.
인근 거창군의 사례가 통영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거창군은 이미 적십자병원 관련 사업에서 부지를 확정하고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정된 국비 예산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통영 지역 내에서 고조되고 있다. 지방 의료 인프라 투자는 매년 예산이 새로 편성되는 구조가 아니다.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같은 규모의 국비를 유치하기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구도심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도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새 병원이 외곽으로 이전하면 고령 인구가 많은 구도심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구도심 메디컬 센터를 별도로 운영해 어르신들이 종전과 같은 필수 진료와 일상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대형 신축 병원과 소규모 구도심 외래 센터를 병행 운영하는 이른바 '분리 거점' 모델이다. 부지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통영시와 병원 측, 지역 정치권이 실질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업에서 공공산후조리원의 신설은 단순한 복지 서비스 추가가 아니다. 통영·고성 일대는 출산율 저하와 더불어 분만 의료기관 자체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이다. 산모들이 분만을 위해 창원이나 부산까지 이동해야 하는 현실은 출산 기피를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공공산후조리원은 민간 산후조리원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 가능해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출산 후 회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구감소 지역의 출산 장려 정책으로서 실질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분만센터와 공공산후조리원이 세트로 갖춰진 지역 공공병원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이 두 시설이 함께 갖춰진다면 통영은 남해안 지역에서 보기 드문 출산 친화 공공의료 거점이 될 수 있다.
경남 남해안 지역은 전국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이미 20%를 훌쩍 넘는 곳이 많고, 뇌졸중·심근경색 같은 심뇌혈관질환의 발생 빈도가 높다. 크고 작은 섬과 반도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성상 도서 지역 주민은 응급 상황에서 구조 보트나 헬기를 타고 육지로 이송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통영에 제대로 된 심뇌혈관질환센터가 들어선다면 인근 고성·거제의 도서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간다. 2,500억 규모의 국비 투자가 단순히 병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경남 남해안 전체 의료망의 재편과 연결된 이유다.
통영 적십자병원 이전 신축 사업은 단순한 병원 건물 교체가 아니다. 3개 시군 45만 명 주민의 응급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지역 의료 인프라 사업이다. 부지 갈등으로 예타가 무산되거나 사업 일정이 지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뇌졸중 환자가 골든타임 안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산모가 분만 가능한 병원을 찾아 멀리 이동하는 현실이 그대로 이어진다. 2,500억 원이라는 기회를 살리려면 지금 당장 부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통영 지역사회의 공통된 요구다. 지역 의료 인프라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분만 의료기관이 사라진 지역에서 젊은 부부가 출산을 꺼리고 결국 인구가 빠져나가는 현상이 전국 농어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응급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해 사망하거나 중증 후유증을 남기는 사례도 이어진다. 통영시와 병원 측, 지역 의회가 이 사업의 무게를 정치적 이해득실보다 앞에 두고 빠른 합의를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2,500억의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는 결국 부지 결정 하나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모든 당사자가 직시해야 한다.
다른 지역 소식도 확인해보세요